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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 윌 비 블러드 (성공의 대가, 고립, 탐욕)

infoseagim 2026. 10. 28. 23:37

목차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단순한 석유 재벌의 성공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더 좋은 조건, 더 높은 연봉"을 좇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일을 시작했는지 잊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 2007)는 바로 그 순간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영화였습니다.



    성공의 대가 — 대니얼 플레인뷰가 올라간 방식

    1898년, 대니얼 플레인뷰(Daniel Plainview)는 뉴멕시코의 황야에서 혼자 곡괭이를 들고 광맥을 팠습니다. 다이너마이트로 발파 작업을 하다가 갱도에서 떨어져 다리를 부러뜨렸는데도, 그는 기어서 광산을 빠져나와 은 샘플을 감정소까지 들고 갔습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대단한 사람이다"가 아니라 "저 사람은 멈추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다"였습니다.

    1902년 석유를 발견한 이후 그는 시추회사(drilling company)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합니다. 여기서 시추란 땅속 깊이 구멍을 뚫어 석유나 가스를 뽑아 올리는 작업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는 계약 현장에서 지주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외주 업체를 쓰지 않습니다. 제 사람들과 직접 합니다." 신뢰를 판 겁니다. 그리고 그 신뢰는 실제로 효과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신뢰가 진심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현장 사고로 부모를 잃은 고아 H.W.를 입양한 것도 "가족적인 사업가"라는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한 선택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직업을 선택하거나 커리어를 쌓는 과정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니얼처럼 관계 자체를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통할지 몰라도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줍니다.

    그의 사업 방식은 로열티(royalty) 계약을 무기로 삼았습니다. 로열티란 생산된 석유 수익의 일정 비율을 지주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지주 입장에서는 당장 목돈이 아니라 장기적인 수익을 기대하는 구조입니다. 그는 16.67%의 로열티를 제시하며 지주들을 설득했고, 캘리포니아 리틀 보스턴(Little Boston) 일대 땅을 헐값에 사들였습니다.

    • 혼자 광산을 개척하며 쌓은 실전 기술과 담력
    • 지주들에게 신뢰를 심어주는 가족적 이미지 전략
    • 로열티 계약과 파이프라인 구축으로 유통 비용을 최소화
    • 주변 토지를 연속으로 매입해 독점적 채굴 구조 완성
    요약: 대니얼의 성공은 실력과 전략 모두의 산물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관계를 수단으로 삼은 방식이 이후 모든 비극의 씨앗이 됐습니다.

     

    고립 — 이기고도 혼자가 된 이유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장면은 대니얼과 아들 H.W.의 관계가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유정(油井, oil well) 폭발 사고, 즉 가스 분출로 H.W.가 청력을 잃었을 때 대니얼은 그를 샌프란시스코의 청각장애인 학교로 보내버립니다. 여기서 유정이란 석유를 뽑아 올리기 위해 지하로 굴착한 우물 형태의 구멍을 말합니다. 아들이 장애를 갖게 된 바로 그 순간, 대니얼은 사업의 짐이 늘었다고 판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1927년, H.W.가 수화 통역사를 통해 동업 관계 해소를 요청하자 대니얼은 잔인하게 반응합니다. H.W.의 청각장애를 조롱하고, 그가 입양된 고아라는 사실을 폭로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대니얼이 얼마나 오랫동안 H.W.를 진짜 가족이 아닌 사업 파트너로 대해왔는지가 한꺼번에 드러난다고 느꼈습니다. 그에게 H.W.는 처음부터 "가족적인 이미지"를 완성하는 도구였을 뿐입니다.

    자칭 신유(信癒) 치료사인 일라이 선데이(Eli Sunday)와의 관계도 비슷한 구조입니다. 신유 치료란 신앙의 힘으로 질병을 고친다고 믿는 종교적 행위를 뜻합니다. 일라이는 지역 교회의 목사로서 종교적 권위를 내세웠고, 대니얼은 사업적 실리를 앞세웠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종류의 권력을 가졌지만,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욕망은 동일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관계는 협업처럼 보여도 결국 한쪽이 무너질 때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대니얼은 알코올 의존증(alcoholism)에 빠진 채 대저택에 홀로 틀어박힙니다. 알코올 의존증이란 술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신체적·심리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막대한 재산을 가졌지만 그것을 함께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경제적인 목표를 세울 때 수입의 크기만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삶의 질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놓치면 결국 이렇게 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요약: 대니얼의 고립은 갑작스러운 불행이 아니라, 모든 관계를 통제와 이익의 관점으로만 바라본 결과가 쌓인 것이었습니다.

     

    탐욕 — 돈과 종교, 욕망의 두 얼굴

    솔직히 저는 일라이 선데이를 처음에는 대니얼의 단순한 피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땅값으로 1만 달러를 요구하고, 교회 봉헌식에서 대니얼을 공개적으로 굴욕 주는 장면까지는요. 그런데 영화 후반부에서 일라이가 라디오 전도사가 되어 돌아왔을 때, 그가 사실 대니얼과 같은 욕망의 구조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일라이는 재정 위기에 몰리자 죽은 윌리엄 밴디(William Bandy)의 땅을 팔겠다며 대니얼을 찾아옵니다. 대니얼은 계약 조건으로 일라이에게 신앙을 부정하게 만듭니다. "신은 없다, 나는 사기꾼이다"라고 직접 말하게 합니다. 이 장면에서 드러나는 것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켜야만 만족하는 심리입니다. 저는 이것이 탐욕(greed)의 본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탐욕이란 단순히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가진 것까지 빼앗아야 채워지는 욕망입니다.

    그리고 대니얼은 일라이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합니다. 밴디 농장의 석유는 이미 오래전에 인접 지역에서의 경사 시추(slant drilling)로 모두 뽑아냈다는 것입니다. 경사 시추란 수직이 아닌 비스듬한 각도로 굴착해 인접 토지 아래의 석유층까지 채굴하는 기술입니다. 그 땅은 이미 빈 껍데기였고, 일라이는 완전히 속은 것이었습니다.

    영화는 1927년 대니얼이 볼링 핀으로 일라이를 살해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집사가 들어왔을 때 대니얼은 바닥에 앉아 "다 끝났어(I'm finished)"라고 중얼거립니다. 저는 이 마지막 대사가 단순히 볼링 게임이 끝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자신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데에서조차 더 이상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된 상태를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전문 데이터베이스인 에서도 이 작품은 "탐욕과 종교, 자본주의의 파괴적 잠재력"을 탐구하는 영화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영화 비평 측면에서 보면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 감독은 업턴 싱클레어(Upton Sinclair)의 소설 <석유!(Oil!)>를 원작으로 삼아, 개인의 내면 붕괴를 20세기 초 미국 자본주의의 성장과 겹쳐 보여줍니다. 제가 직접 두 번을 보고 나서야 느낀 것은, 이 영화가 "돈을 버는 행위"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돈이 목표의 전부가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가장 냉정한 방식으로 기록한 작품이라고 느꼈습니다.

    요약: 대니얼과 일라이는 서로 다른 권력을 가졌지만 같은 욕망 구조를 공유했고, 영화는 그 탐욕이 어떻게 서로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지 보여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완전한 실화는 아닙니다. 업턴 싱클레어의 1927년 소설 <석유!(Oil!)>를 원작으로 하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독자적으로 각색했습니다. 다만 20세기 초 캘리포니아의 석유 붐이라는 역사적 배경은 실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Q. 영화 마지막에 대니얼이 일라이를 죽이는 이유가 뭔가요?

    A. 표면적으로는 일라이가 이미 텅 빈 땅의 채굴권을 팔려고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 더 깊은 이유가 있다고 봤습니다. 대니얼에게 일라이는 자신이 결코 이길 수 없다고 느꼈던 유일한 존재였고, 오랫동안 쌓인 굴욕감이 그 순간 폭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그 장면은 탐욕이 외부가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할 때 어떤 결말을 맞는지 보여줍니다.

     

    Q. 영화에서 H.W.는 진짜 아들이 아닌가요?

    A. 맞습니다. H.W.는 대니얼의 유정 현장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의 아들입니다. 대니얼이 입양했지만, 영화 후반부에서 대니얼 스스로 "넌 내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고아"라고 폭로합니다. H.W.는 이 말을 들은 후 "당신의 피가 내게 없어서 다행"이라며 떠납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오랜 시간을 함께해도 관계의 본질이 신뢰가 아니면 한순간에 무너진다는 것이었습니다.

     

    Q. 데어 윌 비 블러드,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OTT 플랫폼의 서비스 제공 여부는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서 특정 플랫폼을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검색창에 영화 제목을 입력하면 현재 어느 플랫폼에서 서비스 중인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상영 시간은 약 158분이며, 2007년 작품입니다.

     

    결론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대니얼은 왜 그렇게 됐을까"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였습니다. 직업적으로 더 나은 조건을 원하는 것, 사업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구입니다. 저 역시 경제적인 안정을 삶의 중요한 조건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니얼의 삶은 어느 순간부터 목표가 수단을 정당화하는 구조로 굳어졌습니다. 그 결과 그는 막대한 재산을 가졌지만 볼링장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성공을 부정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커리어든 사업이든 경제적 목표를 세울 때, 수입의 크기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건강과 관계와 자기 자신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함께 살피는 것이 결국 더 오래가는 방식이라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확인했습니다. 데어 윌 비 블러드에 관한 더 자세한 줄거리와 배경 정보는 

     

    참고: https://www.imdb.com/title/tt0469494/plotsummary/?utm_source=chatgp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