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1974년 8월 15일 사건을 단순히 '문세광의 저격'으로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공개된 정보와 영화의 설정을 비교해 보니, 제가 알고 있던 사실이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 새삼 느꼈습니다. 《암살자(들)》은 미제(未濟)로 남은 의문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스릴러인데,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게 실제인가, 각색인가'를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 경계를 의식하며 감상하는 것이 이 작품을 제대로 소화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이브미디어코프의 계보, 이 영화가 놓인 자리
《암살자(들)》을 이해하려면 제작사인 하이브미디어코프의 라인업을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의 봄》, 《남산의 부장들》, 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까지 이 회사는 일관되게 한국 근현대사의 권력 구조를 소재로 삼아왔습니다. 제가 이 계보를 처음 의식했던 건 《남산의 부장들》을 보고 나서였는데, 건조한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대통령 암살 사건을 다루는 방식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뒤로 이 제작사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이번엔 어떤 시대를 어떻게 짜르나' 하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멀티캐스팅(multi-casting) 전략은 여전합니다. 멀티캐스팅이란 복수의 스타 배우를 비중에 상관없이 골고루 배치해 집단적 신뢰감을 주는 캐스팅 방식입니다. 엄태웅, 박지환, 오정세, 정우성, 심은경 등 쉽게 나열이 안 될 만큼 많은 배우들이 단 한 장면에도 기꺼이 등장하는데, 이 전략이 서사의 긴장감을 높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선을 분산시키는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성은 범인을 의심하는 화살이 계속 이동하기 때문에 집중력이 약해지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스타 카메오는 관객의 흥미를 끌어올리는 장치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직접 이 영화의 출연진 정보를 확인하면서 느낀 건 오히려 '이 중 누구가 진범 역할인가'를 추리하는 과정에서 피로감이 쌓인다는 점이었습니다. 스릴러에서 서스펜스(suspense)—즉 결말을 모르는 상태에서 오는 긴장감의 지속—는 시선이 한 방향으로 집중될 때 극대화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캐스팅 방식이 장르의 호흡과 완전히 일치하는지는 의문으로 남습니다.
- 《서울의 봄》: 권력 공백기를 역사 스릴러로
- 《남산의 부장들》: 대통령 암살을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 《메이드 인 코리아》: 애국으로 포장된 권력을 시리즈로
- 《암살자(들)》: 미제 저격 사건을 미스터리 추리극으로
역사왜곡 우려, 팩트와 각색의 경계
솔직히 이 부분이 제가 가장 신경 쓰인 지점입니다. 인터넷에서 역사적 사건을 찾아보면 같은 사건을 두고도 제목과 내용이 크게 다른 글들이 존재합니다. 어떤 글은 공식 기록 중심으로, 다른 글은 특정 의혹 중심으로 서술합니다. 처음 읽은 글 하나만으로 전체 사건을 이해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제가 직접 자료를 찾아보면서 여러 번 느꼈습니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발생한 저격 사건의 경우, 재일교포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발포하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피격 사망한 것이 공식 기록입니다. 여기서 공식 기록(official record)이란 국가 공인 기관이 수집·보존하는 1차 사료를 의미하는데, 영화는 이 공식 기록에 '총성은 여섯 발인데 탄환은 네 발뿐'이라는 맥거핀(MacGuffin)을 얹습니다. 맥거핀이란 서사를 추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결말과 무관한 허위 단서를 뜻합니다. 범인의 정체가 결국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이 영화의 구조 자체가 맥거핀을 의식한 설계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범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건을 이렇게 빠른 시점에 영화화하는 것이 적절한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영화적 상상력으로 채운 가설이 관객에게 사실처럼 각인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 왜곡(historical distortion)—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을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으로 잘못 전달하는 행위—이 우려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영화 속 '김대중 납치 사건으로 악화된 한일 관계를 봉합하려는 정치적 설계'라는 가설은 흥미로운 상상이지만, 이를 사실로 단정할 근거는 현재까지 없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소개하면서 지키고 싶은 기준은 하나입니다. 영화 속 장면이 인상적이더라도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지 않고, 실제 기록과 각색을 나란히 비교해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한국 현대사 연구자들의 관련 논문을 검색해 보면 이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며, 어느 하나도 결정적 증거로 확정된 것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제사건이 남긴 것, 철구의 등이 전한 메시지
제가 공개된 줄거리와 스틸컷을 살펴보면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장면은 철구(유해진)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귀가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뒤로 '국기에 대한 경례'가 시작되지만 철구만 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장면은 '반항'으로 읽힌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반항이라기보다 허탈함에 가깝습니다. 국가를 향한 충성을 몸에 새긴 인물이 국가 폭력으로 짓밟힌 뒤 보이는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철구가 오프닝에서 아들에게 '국기에 대한 경례'를 가르치는 장면과 이 결말이 대칭을 이루는 구조는 프로파간다(propaganda)적 긴장감을 내장하고 있습니다. 프로파간다란 특정 이념이나 가치를 대중에게 주입하기 위해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기법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화가 이 기법을 권력 비판의 도구로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후반부의 '자유언론 실천 선언문' 낭독 장면도 같은 맥락에서 읽힙니다. 누군가에게는 클라이맥스로, 누군가에게는 직업 윤리를 강조한 시대의 프로파간다로 다르게 전달될 수 있는 장면입니다.
제가 직접 관련 다큐멘터리와 기사를 찾아보니, 당시 백지 광고 사태와 기자 해직 사태는 실제로 기록된 언론 탄압 사례입니다. 영화는 이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두 언론인 재환(박해일)과 영일(이민호)의 취재 과정을 구성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결국 진실이 표류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미제(未濟)—즉 수사가 종결되지 않고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라는 실제 역사를 그대로 반영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이 영화가 끝나고 관련 다큐와 자료를 찾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면, 그건 이 답답한 마무리 덕분일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건 최승화(최유리)의 죽음입니다. 행사를 누구보다 기다렸던 평범한 시민이 사건의 여파로 목숨을 잃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영부인의 죽음에 집중되는 시선 밖으로 밀려난 이 존재가 오히려 영화의 진짜 메시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폭력의 희생양은 언제나 가장 힘없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그 죽음은 기록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영화가 '암살자'가 아닌 '암살자(들)'이라는 복수형 제목을 선택한 이유일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암살자(들)》은 실화 기반인가요, 허구인가요?
A. 1974년 8월 15일 영부인 저격 사건이라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하되,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각색한 작품입니다. 공식 기록에서 확인된 사실과 영화 속 가설을 구분해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역사 영화는 사실 그대로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어느 작품이든 극적 구성을 위한 각색이 반드시 포함됩니다.
Q. 범인이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 건 영화적 선택인가요?
A. 실제 역사에서도 이 사건은 미제(수사가 종결되지 않아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로 남아 있습니다. 영화는 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범인 정체는 서사를 이끄는 맥거핀으로 기능하며, 진짜 주제는 국가 폭력 속 소시민의 이야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하이브미디어코프 영화들은 역사 왜곡 논란이 있지 않나요?
A. 실화를 다룬 역사 영화는 늘 역사 왜곡 논란의 가능성을 안고 있습니다. 의문을 제기하는 것과 특정 주장을 사실로 확정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영화를 감상한 후 공신력 있는 자료와 대조해 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저도 이 작품을 접한 뒤 관련 기록을 직접 찾아보게 됐습니다.
Q. 주연 세 명의 시점이 나뉘는 구조, 따라가기 어렵지 않나요?
A. 경찰 철구(유해진), 베테랑 기자 재환(박해일), 신입 기자 영일(이민호)의 시점이 순차적으로 쌓이는 구조입니다. 각 인물의 직업 윤리와 사건 접근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같은 사건을 다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다만 스타 카메오가 많아 시선이 분산될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하고 보시면 좋습니다.
결론
《암살자(들)》은 시원하게 해소되는 영화가 아닙니다. 보고 나서 찝찝함이 남고, 그 찝찝함이 관련 다큐와 자료를 찾아보게 만드는 능동적인 작품입니다. 제가 이 작품을 평가하면서 가장 경계한 것은 영화 속 장면을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이브미디어코프의 계보 안에서 이 영화가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 공식 기록과 각색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의식하면서 보는 것이 이 작품을 제대로 소화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1974년 8월 15일 저격 사건에 대한 국가기록원 자료를 한 번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영화와 기록을 나란히 두고 비교하면, 이 작품이 어디서 상상을 시작하는지 훨씬 선명하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