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직장에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료와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저는 솔직히 어색함부터 느꼈습니다. 영화 《인턴》(The Intern, 2015)은 그 어색함이 어떻게 진짜 신뢰로 바뀌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70세 시니어 인턴 벤 휘태커(로버트 드 니로)와 스타트업 CEO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의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세대 간 협력이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조직에 실질적인 이득을 준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옵니다.
세대 협력, 숫자로 보면 더 분명하다
벤이 지원한 '어바웃 더 핏(About the Fit)'은 창업 18개월 만에 직원 200명 이상 규모로 성장한 스타트업입니다. 이 속도는 영화적 과장이 아닙니다. 실제로 고성장 스타트업일수록 경험 부족에서 오는 운영 리스크가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출처: Harvard Business Review에 따르면, 창업자 CEO가 회사 규모를 일정 수준 이상 키우면 외부 전문경영인(Professional CEO) 도입 압력을 받는 경우가 상당수입니다. 여기서 전문경영인이란 창업자와 달리 기업 운영 전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훈련받은 경영 전문가를 가리킵니다.
영화 속 줄스도 투자자들로부터 외부 CEO를 채용하라는 압박을 받습니다. 그 상황이 저는 꽤 익숙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입사 초기에 있던 조직도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시스템보다 사람 의존도가 높았고, 베테랑 직원 한 명이 자리를 비우면 업무 전체가 흔들리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벤은 이 조직에서 명함도 없고, 전담 업무도 없이 시작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가 수십 년간 전화번호부 회사를 운영하며 쌓은 조직 이해력, 즉 암묵지(Tacit Knowledge)가 자연스럽게 발휘된다는 부분입니다. 암묵지란 말로 정리하기 어렵지만 경험을 통해 체득된 실천적 지식을 의미합니다. 매뉴얼에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는 것, 그게 바로 암묵지입니다. 벤은 이 능력 덕분에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사무실의 방치된 책상을 정리하고, 동료들 사이의 갈등을 조용히 중재합니다.
- 창업 18개월, 직원 200명 이상: 고성장이 만들어낸 운영 리스크
- 투자자 압박으로 등장하는 외부 전문경영인 채용 논의
- 벤의 암묵지: 지시 없이도 조직에 필요한 행동을 먼저 한다
경험 자산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
제가 새 직장에 들어갔을 때 업무 시스템은 빠르게 익혔습니다. 그런데 고객 클레임이 터졌을 때는 달랐습니다. 저는 매뉴얼대로 답변을 준비하는 동안, 오래 일한 선배는 이미 고객의 감정을 먼저 읽고 상황을 수습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그 순간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순히 경력이 긴 것이 아니라, 상황 판단의 프레임 자체가 달랐던 겁니다.
벤이 줄스의 운전기사 역할을 맡게 되는 장면이 이와 비슷합니다. 운전기사가 근무 중 음주를 했다는 사실을 발견한 벤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직접 상황을 정리합니다. 이 장면에서 벤이 보여주는 건 위기 대응 능력(Crisis Management)입니다. 위기 대응 능력이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감정적 동요 없이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는 역량을 말합니다. 이 능력은 교육보다 경험에서 더 많이 길러집니다.
줄스가 물류창고 문제를 현장에서 직접 지휘하며 해결하는 장면도 같은 맥락입니다. 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떤 외부 CEO도 이 사람만큼 회사에 헌신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립니다. 제 경험상 이건 꽤 정확한 관찰입니다. 창업자는 수치와 보고서 너머의 맥락을 본능적으로 파악합니다. 그 감각은 짧은 시간에 이식되지 않습니다.
한편 벤이 젊은 동료 제이슨에게 문자메시지로 갈등을 피하려 하지 말고 직접 대화하라고 충고하는 장면은, 대인관계 역량(Interpersonal Competency)의 차이를 잘 보여줍니다. 여기서 대인관계 역량이란 단순히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갈등 상황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적절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이 역량은 나이와 비례하지 않지만, 다양한 상황을 겪어본 경험이 축적될수록 정교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직 문화는 누가 만드는가
영화 초반에 줄스의 회사는 에너지는 넘치지만 정리되지 않은 느낌입니다. 사무실 한편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방치된 책상이 있고, 직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빠르게 움직이지만 서로 간의 연결은 부족해 보입니다. 이건 고성장 스타트업에서 자주 나타나는 조직 문화 공백(Cultural Gap) 현상입니다. 조직 문화 공백이란 구성원이 빠르게 늘어나는 속도를 문화와 규범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생기는 간극을 의미합니다.
출처: Gallup의 연구에 따르면, 직원 몰입도(Employee Engagement)가 높은 조직은 그렇지 않은 조직보다 생산성이 약 21% 더 높습니다. 직원 몰입도란 직원이 단순히 일을 처리하는 수준을 넘어, 조직의 목표에 감정적으로 연결되어 주도적으로 기여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벤이 조직에 가져다준 것이 바로 이 몰입을 끌어올리는 분위기였습니다.
벤은 자신의 경험을 앞세워 가르치려 들지 않습니다. 이 점이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본 부분입니다. 그는 먼저 관찰하고, 필요한 순간에만 조용히 개입합니다. 비서 베키가 자신이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한다는 불안을 드러낼 때, 벤은 데이터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그녀가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설명합니다. 그리고 줄스에게도 베키의 역할을 칭찬해 줄 것을 권합니다. 이 일련의 행동은 조직의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을 높이는 방식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심리적 안전감이란 구성원이 실수나 의견 표현에 대해 처벌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없이 솔직하게 행동할 수 있는 조직 분위기를 뜻합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나이와 직급에 관계없이 서로 잘하는 부분을 인정하고 공유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팀에서 일할 때, 저는 훨씬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습니다. 반대로 위계만 강조되는 팀에서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조직 문화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만든다는 걸, 벤을 보면서 다시 확인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인턴》은 실제 시니어 인턴 제도를 참고한 건가요?
A. 영화 자체는 픽션이지만,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시니어 인턴십 또는 재취업 지원 프로그램이 실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은퇴 후 사회 참여를 원하는 고령층의 수요와, 경험 인력이 필요한 기업의 수요가 맞닿는 지점에서 이 제도가 생겨났습니다. 영화는 이 현실적 배경 위에 두 인물의 관계를 얹은 구조입니다.
Q. 줄스가 외부 CEO를 채용하지 않기로 한 이유가 뭔가요?
A. 영화는 이 결정이 남편의 외도 때문만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벤은 줄스에게 아무리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도 창업자만큼 회사에 헌신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줄스 스스로도 자신이 내린 결정이 회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선택을 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타인의 외압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으로 결론을 낸다는 점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입니다.
Q. 벤과 줄스의 관계가 단순한 우정 이상으로 발전하나요?
A. 영화는 두 사람의 관계를 로맨틱한 방향으로 전개하지 않습니다. 줄스가 "당신은 내 가장 친한 친구"라고 표현하듯, 세대를 넘어선 진짜 신뢰와 우정으로 귀결됩니다. 오히려 그 비로맨틱한 관계가 영화를 더 설득력 있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Q. 나이 많은 직원이 젊은 조직에 적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벤의 방식이 하나의 답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경험을 먼저 내세우지 않고, 새 환경의 규칙을 먼저 관찰하고 배우는 자세입니다. 모르는 기술은 솔직하게 배우고, 자신이 가진 경험은 요청받을 때 자연스럽게 꺼내는 것입니다. 이 태도가 세대 차이를 갈등이 아닌 자원으로 전환시킵니다.
결론
영화 《인턴》을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장면은 벤이 마지막에 공원에서 태극권을 하는 모습입니다. 늘 쫓기듯 달리던 줄스가 그 옆에서 동작을 따라 하며 잠깐 멈추는 장면입니다. 이 영화는 결국 속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조직과 개인에게 암묵지와 심리적 안전감, 세대 간 협력이 왜 필요한지를 설득력 있게 풀어냅니다.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지혜로운 것도 아니고, 젊다고 경험이 부족한 것만도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조직은 능력 있는 사람들만 모인 곳이 아니라,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 있는 곳입니다. 이 영화가 그 생각을 다시 단단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세대 협력이나 조직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보고서보다 이 영화 한 편이 더 많은 걸 전달해 줄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www.imdb.com/title/tt2361509/plotsummary/?utm_source=chatgpt.com#synops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