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사라졌다고 해서 원인까지 없어진 걸까요. 저는 파묘를 보면서 그 질문이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조상의 묘를 옮기는 것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어느 순간 식민지 시대의 상처와 맞닿아 있었고, 그 구성이 단순한 공포 이상의 무게로 남았습니다.공포 구조 — 무엇이 이 영화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가파묘(破墓)는 2024년 개봉한 장재현 감독의 작품으로, 무속인·풍수지리사·장의사가 한 팀을 이뤄 문제 있는 묫자리를 파내는 과정을 다룹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는데, 초반부터 긴장감이 만들어지는 방식이 일반적인 공포영화와 달라서 인상적이었습니다.풍수지리(風水地理)란 땅의 기운과 지형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동아시아 전통 사상입니다. 쉽게 말해 어디에 집을 짓고, 어디에 묘를 쓰느냐가 살아있는 사람..
솔직히 저는 주토피아를 처음 볼 때 그냥 귀여운 동물 나오는 애니메이션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이직을 준비하면서 "이전 업종이 다르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편견이라는 게 이렇게 일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걸, 이 영화가 꽤 정확하게 짚어냈다고 느꼈습니다.편견은 나쁜 사람만 갖는 게 아니었습니다주토피아는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55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2016년 개봉했습니다. '바이런 하워드'와 '리치 무어'가 공동 감독을 맡았고, 각본은 '재러드 부시'가 작성했습니다. Zoo(동물원)와 Utopia(유토피아)를 합성한 제목처럼, 영화 속 세계는 포유류들이 공존하는 이상적인 도시처럼 보입니다.그런데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1974년 8월 15일 사건을 단순히 '문세광의 저격'으로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공개된 정보와 영화의 설정을 비교해 보니, 제가 알고 있던 사실이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 새삼 느꼈습니다. 《암살자(들)》은 미제(未濟)로 남은 의문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스릴러인데,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게 실제인가, 각색인가'를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 경계를 의식하며 감상하는 것이 이 작품을 제대로 소화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하이브미디어코프의 계보, 이 영화가 놓인 자리《암살자(들)》을 이해하려면 제작사인 하이브미디어코프의 라인업을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의 봄》, 《남산의 부장들》, 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까지 이 회사는 일..
새 부서에 배치되던 날, 저는 ERP 화면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버튼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옆자리 동료는 이미 두 화면을 동시에 열고 데이터를 입력하고 있었죠. 그때 생각났던 영화가 이었습니다.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 나치 독일의 암호 기계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남겼습니다.암호 해독보다 어려웠던 것 — 혼자라는 착각일반적으로 천재는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니 그 믿음이 조금씩 흔들렸습니다.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은 블레츨리 파크에 소집되어 에니그마 해독에 매달립니다. 에니그마(Enigma)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오랜만에 옛 친구 이름을 검색창에 쳐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가끔 그렇게 합니다. 소식이 궁금한데 막상 연락하기가 애매해서, 그냥 이름만 검색하다 창을 닫는 그 기분. 영화 써니를 보고 나서 그 기분이 한참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2011년 강형철 감독의 작품으로, 일본·베트남·홍콩 등 여러 나라에서 리메이크될 만큼 흥행에 성공한 한국 영화입니다.써니 줄거리 — 25년이라는 시간이 만든 거리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 편집(cross-cutting)하는 구성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여기서 교차 편집이란 두 개의 다른 시간대나 공간을 번갈아 보여주며 긴장감과 감정선을 동시에 쌓아가는 영화적 기법을 말합니다. 써니는 이 기법을 감각적으로 활용해서, 중년 주부 나미의 무기력한 현재와 1986년 서울 여고 시절의..
계약서 한 장을 앞에 두고 '대충 괜찮겠지'라며 서명을 서두른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제가 읽지 않고 넘긴 조항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영화 을 보고 난 뒤,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아는 것, 그리고 그것을 지켜줄 법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된 작품입니다.줄거리와 부림사건, 그 시절 법정이 감추려 했던 것영화 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법정 드라마'일 거라 생각했는데, 장면 하나하나가 실화의 무게를 그대로 싣고 있었습니다.이 영화는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합니다. 부림사건이란 1981년 부산에서 공안 당국이 학생과 교사 22명을 영장 없이 불법으로 체포해 고문하고 기소한 실제 사건입니다. 이른바 ..
호텔 지배인이 손님의 연인이 된다면, 그게 직업정신일까요 타락일까요. 처음 이 영화 포스터를 봤을 때 저는 그냥 색감 예쁜 유럽 감성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보고 나서는 꽤 오랫동안 구스타브라는 인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2014년작 은 단순한 코미디 어드벤처가 아니었습니다.줄거리: 전설적인 지배인과 벨보이의 도망영화는 액자식 구성(frame narrative)으로 시작합니다. 액자식 구성이란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담기는 서사 방식으로, 이 영화에서는 무려 세 겹의 시간대가 겹쳐집니다. 작가가 노신사에게 들은 이야기, 그 노신사가 젊었을 때 겪은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읽는 소녀까지. 이 구조를 파악하고 나니 영화가 훨씬 입체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입사 첫 주를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던져진 그 느낌, 저만 겪은 건 아닐 겁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감각이 을 다시 보던 날 밤, 화면 속 열 살짜리 치히로와 정확히 겹쳤습니다. 낯선 세계에서 이름을 빼앗기고, 쫓기듯 일을 배우는 그 아이가 결국엔 가장 단단하게 성장한다는 이야기. 이 영화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닌 이유를 직접 겪어보니 더 잘 알 것 같습니다.낯선 조직에 던져진다는 것 — 직장 적응영화 초반의 치히로는 솔직히 좀 밉살스럽습니다. 투정을 부리고, 겁을 먹고, 자기 신발 끈도 제대로 묶지 못할 것 같은 아이. 그런데 부모님이 돼지로 변하는 순간 그 아이는 선택지가 사라집니다. 살아남으려면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하려면 유바바에게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저도 첫 ..
결혼을 준비하면서 솔직히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연애할 때는 몰랐던 서로의 차이가 생활 속에서 하나씩 드러날 때, 그냥 특정 기억 하나만 조용히 지울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을 다시 보면서 그 감각이 정확히 어디서 오는 건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기억 삭제라는 SF적 장치를 쓰고 있지만, 이 영화가 실제로 건드리는 건 갈등을 마주하는 방식과 관계를 다시 선택하는 용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기억 삭제가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영화에서 조엘(Jim Carrey)은 자신의 기억에서 클레멘타인(Kate Winslet)이 사라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경험합니다. 처음에는 싸움과 상처부터 지워지는데, 제가 이 ..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단순한 석유 재벌의 성공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더 좋은 조건, 더 높은 연봉"을 좇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일을 시작했는지 잊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 2007)는 바로 그 순간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영화였습니다.성공의 대가 — 대니얼 플레인뷰가 올라간 방식1898년, 대니얼 플레인뷰(Daniel Plainview)는 뉴멕시코의 황야에서 혼자 곡괭이를 들고 광맥을 팠습니다. 다이너마이트로 발파 작업을 하다가 갱도에서 떨어져 다리를 부러뜨렸는데도, 그는 기어서 광산을 빠져나와 은 샘플을 감정소까지 들고 갔습니다. 제가 이 ..